목차
- 내가 이 책을 내게 된 이유
- 월레스의 기록
- 맺으며
내가 이 책을 내게 된 이유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일자리를 찾던 중 가족이 있음에도 혼자 집을 마련해 틀어박혀 무언가를 연구하는 분을 소개받았다. 그 분의 이야기는 혼자 따로 떨어져 살다보니 실제 생활과 연구의 진행에서 여러 가지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나를 고용하고 싶다는 설명이었다.
나의 주인님이 된 그 분 - 성함은 월레스라고 했다 - 의 연구 대상은 바로 다크나이트.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길래 검은 갑옷을 입고 보통 사람이 발휘하기 힘든 힘을 마음대로 발휘하는가,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길래 팔라딘을 적대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길래 그토록 비밀스럽게 에린에 남아 있는가. 주인님은 다크나이트에 대한 모든 것에 관심을 쏟았고, 나는 곁에서 그런 주인님이 진행하시는 연구를 도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다크나이트에 대한 고대의 기록과 유물과 벽화와 사람들의 증언은 주인님의 주의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이상할 정도의 집착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무척이나 온화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을 할 때 힘이 든다거나 마음고생을 하게 되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일에 만족했고, 주인님과 같은 분을 모신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으며, 주인님 또한 내가 하는 일을 미덥게 보시는 것 같았다.
주인님은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사라진 것은 내가 그 분을 모신 뒤 3개월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발견이나 갑옷의 복원에 필요한 물건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급하게 다른 곳으로 가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다시 또 몇 개월이 지나도 스승님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수색대를 조직해 스승님을 찾았음에도 스승님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반 년이 넘은 뒤, 스승님의 죽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족분들은 시신만이라도 찾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조차도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족분들은 결국 깊은 시름에 잠겨 스승님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태우기로 결정했고, 나는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었기에 그 일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스승님이 연구한 기록까지 태우는 것은 그분의 일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이 남긴 기록은 따로 분류해놓을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 분의 유품과 기록을 들여다보던 중 나는 어떤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기록을 읽는 순간 숨이 멎을 듯한 충격과 함께 등줄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내가 막연히 고대의 악이라고 생각했었던 다크나이트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다각적인 내용이 적힌 그 기록에는 다크나이트의 존재와 그 특성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었던 주인님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나는 이 기록을 유족분들을 설득해서 책의 형태로 남길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다크나이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다크나이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리고 그 갑옷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물건인지 새삼 돌이켜보고, 호기심으로 망칠 수 있는 소중한 인생을 보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월레스의 기록
퓬바르로부터 어떤 종류의 마족들이 다크나이트의 갑옷 중 일부를 호신부처럼 지니고 있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내 심장은 큰 북을 울리는 것처럼 쿵쾅거렸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갑옷의 조각을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크나이트 이야기를 좋아했다. 다크나이트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전해져오는데, 내가 가장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다크나이트 또한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빛의 기사에 대한 무용담에 지지 않을 정도의 다채로운 활약상이 묘사된다는 점이었다. 비록 그것이 인간이 아닌, 마족들의 편에서 이루지는 것이라 해도 다크나이트의 전설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켜왔다.
실제로 많은 전설에서 다크나이트의 갑옷으로 묘사하는 검은 빛으로 후처리된 갑옷이 에린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다크나이트에 대해 보이는 이러한 나의 관심은 딱히 유별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에린의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를 가리켜 다크나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크나이트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의 일부이고, 팔라딘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한 허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다크나이트에 막연한 검은 갑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백과 흑의 대립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다크나이트가 실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의 유적에서 발견된 다크나이트의 갑옷이 이러한 나의 추측을 뒷받침한다. 고대의 전설에서 다크나이트의 갑옷은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갑옷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팔라딘의 갑옷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빈곤한 탓으로 돌리고, 다크나이트 자체는 인간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졌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던전에서 마족들이 운반하던 다크나이트의 갑옷 조각이 발견되고, 그것을 마법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다크나이트의 힘에 얽힌 모든 비밀이 다크나이트의 갑옷에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조각을 통해 분석한 결과, 다크나이트의 갑옷은 외부의 충격이나 공격으로 착용자를 거의 완벽하게 보호하는 마법적인 처치가 되어 있는데, 이 처치는 갑옷의 재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갑옷이 검은 빛을 띄게 만든다. 이것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입은 사람을 단절시키는 힘의 결과로, 이 갑옷의 마법적인 힘은 바로 그 옷을 입고 있는 인간 자신에 의해 입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채로 계속 공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갑옷이 고대의 문헌에서 암흑의 갑옷으로 표현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갑옷에 깃든 마법적인 힘은 갑옷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갑옷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면, 조각 하나에서 발견한 특징이 아니라, 실제로 착용을 통해 그 힘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고 있고, 나와 같이 다크나이트와 그 갑옷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완전한 형태의 암흑의 갑옷을 발견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크나이트의 갑옷이 부서져 부분부분 출토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 중 어떤 것은 마력을 완전히 잃어 그 문양만으로 암흑의 갑옷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떤 것은 미약하게나마 그것의 원래 모습이 가지고 있었을 법한 마력의 아주 작은 부분을 보존하고 있어 원래 암흑의 갑옷이 가지고 있을 마력과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졌을 지를 상상해내야만 한다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 조각 하나하나는 나와 같은 연구자들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다크나이트의 갑옷이 어떤 식으로 제조되는지에 대한 방법만이라도 우리가 알 수 있다면, 이런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나는 내 연구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퓬바르를 만날 수 있었다. 거의 십 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암흑의 갑옷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온 그는 총명함과 열정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었다. 퓬바르는 그동안 자신이 발견한 부서진 갑옷과 내가 발견한 갑옷 조각을 함께 비교해 볼 것을 원했고, 나 또한 암흑의 갑옷이 원래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쾌히 그의 요청을 승낙했다.
우리가 한 데 모은 조각이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갑옷의 조각이 여러 갑옷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암흑의 갑옷이 전체적으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갑옷의 모양이 실제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눈 앞의 실체로서 파악할 수 있었다.
퓬바르와 나는 환호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이러한 생각을 처음 해 낸 퓬바르에게 내가 발견한 갑옷 조각을 맡기는 용기를 내게 했다. 나는 갑옷의 견본을 얻어서 마음대로 실험할 수 있었다. 서로가 이 약속에 만족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퓬바르를 방문해 갑옷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새로운 일과가 되었다. 퓬바르는 내가 감탄할만큼 갑옷을 세심할 정도로 잘 보관했는데, 갑옷은 처음 모았을 때보다 훨씬 보존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았다. 부식되고 떨어져나가 흐리멍덩했던 이음새는 날카로움을 되찾아갔고, 잘못 연결된 부분도 제 위치를 찾아갔다. 애초에 한 갑옷에서 나온 조각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다크나이트의 갑옷조각을 도둑질해가는 자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당시 나는 갑자기 증가하는 갑옷에 깃든 마법력이 특정한 절기와 상관이 있는지를 실험으로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다. 나와 서신을 나누던, 퓬바르와도 면식이 있는 암흑의 갑옷 연구자 몇 명이 다른 이들이 모으고 있는 갑옷을 훔쳐가는 도둑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마 보존상태가 좋은 퓬바르와 내 유물에 대해서도 눈독을 들일 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퓬바르의 꼼꼼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화제는 곧 고대의 전쟁에서 등장한 다크나이트에 대한 새로운 기록의 해독으로 옮겨갔고, 고대의 언어에 대해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기록의 해독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기록의 해독은 까다롭긴 했지만,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내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다크나이트의 갑옷이 깨어진 채로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크나이트의 힘을 완전히 빼앗기 위해서는, 그 갑옷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기록의 설명이었다. 그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아닌 그 갑옷을 파괴해서 힘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후대에 그 갑옷을 찾는 사람을 번거롭게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진대 완전한 형태의 갑옷은 왜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동료 연구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갑옷 조각의 도난과 함께 더더욱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도둑이 갑옷 연구자를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실종된 연구자의 시신조차 찾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 정도로 도둑의 수법은 대담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나는 내심 퓬바르가 걱정이 되었고, 퓬바르는 팔라딘 수련생들이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로 그런 내 불안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불안이 잦아들 때마다 새로운 도난소식이 들려왔고, 범인은 굉장히 지능적인 모양이었는지 어떠한 흔적조차, 단서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그에 덧붙여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암흑의 갑옷을 만든 마족들이 그것을 연구하는 인간이 자신들의 비밀에 가까이 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까. 나 자신도 연구를 계속할 때는 과연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밤에 드는 걱정일 뿐, 낮이 되면 나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앞서의 염려를 떨처내는 데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퓬바르가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때쯤이었다. 혈색도 눈에 띄게 안좋아졌다. 그 역시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잘 관리된 갑옷은 군데군데 광택을 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 갑옷 또한 조만간 도둑이 노리는 대상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내가 염려하던 일은 그로부터 일 주일 뒤에 일어났다. 당시 나는 암흑의 갑옷을 소재로 하는 시를 해독하고 있었다. 암흑의 갑옷은 입은 사람의 욕망을 증폭해 강대한 힘을 발휘하게 만들고, 인간의 욕망을 물질화된 형태의 힘으로 보여주는 대신 그 갑옷을 입은 사람의 감정과, 의지를 흡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갑옷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퓬바르의 최근 행동이 부쩍 원래 모습을 찾기 시작한 갑옷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퓬바르를 찾아갔을 때, 나는 맨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퓬바르의 설명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갑옷과 함께 퓬바르가 실종되었다. 퓬바르의 집 앞을 지키던 팔라딘 수련생들은 모두 크게 다친 상태였다. 퓬바르는 무언가 강대한 힘에 의해 갑옷과 함께 납치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갑옷이 퓬바르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갑옷의 조각이 가지고 있는 마력이 그를 사로잡아, 스스로 갑옷조각을 모으고, 그것으로 갑옷을 원래 모양을 갖추게 하고, 그리고 그 갑옷을 입었다면 모든 일이 설명이 된다. 다른 연구자들의 실종은 비록 명쾌하지 않은 면이 있지만...
그것을 다크나이트 갑옷의 저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구체적인 것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심증으로는 그렇다.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갑옷을 부적처럼 가지고 있다는 던전의 마족들과 이야기해 내가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다. 퓬바르의 실종 후, 나를 돕는 핀탄과 함께 찾은 갑옷의 조각을 가지고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다.
맺으며
기록은 여기까지다. 내 스승님은 그동안 그 분이 모았던 갑옷과 함께 실종되었으며, 아직까지 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스승님이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일을 꾸미거나 위장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 역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뿐인 것 같다. 암흑의 갑옷에는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비밀이 있으며, 또한 그 비밀 중 하나는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저주를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만약 마족을 만나거나 다크나이트의 갑옷으로 보이는 물건을 접하게 된다면,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되새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모시던 분을 보게 되면 그 소식을 내게 전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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