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귀여움이 싫다(I don't like Cuty)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동물들도 이야기를 할까?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전부 의미가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

    "고양이에게 젓갈을 주는 집이 어디 있어? 당신 나를 키울 생각이 있는 거아?"
    "아! 손좀 대지 마 귀찮아!"
    "어느 고양이는 궁전에서 호사스럽게 사는데... 나는 이게 뭐야?"

    뭐 이런 소리를 하루종일 배를 보인 채 중얼거리고 있다면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 하는 소리는 할 수 없겠지.

    나는 귀여움이 싫다.

    귀여운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무엇이 귀여운지 아닌지는 느낄 수 있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는 것에 동의할 정도로 평범한 감성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난 귀여움이 싫다.

    새끼 고양이가 앙증맞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아 정말 귀여움 그 자체다. 아기들이 품 안에서 웃고 있는 것을 상상해 봐라.
    이런 저런 많은 것들에 귀엽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귀여움이 이제 세상에서 메이저가 되고 있다.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귀엽다는 표현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근육질 전사가 한 손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대도, 그 반 정도 되는 몸으로 힘없이 웃는 꽃미남보다 인기가 없다. (힘내라 퍼거스!)
    뭐 보통 이런 조사가 편중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확실히 주 소비층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런 현상이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메이저라는 것은 무섭다. 소비는 생산을 낳는다는 단순한 원리가 이런 때는 무섭게 느껴진다. 팔기 위해서 모두가 달려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것은 원칙이 되어서 지키지 않으면 왠지 껄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장점은 부각되고 단점은 모두가 감추려고 한다. 어차피 대세라면 파는 쪽에서는 겸사겸사 팔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산자 측에서도 그 이면의 모습을 잃어버릴까봐 무섭다. 아무리 귀여운 애완동물도 배설은 한다.
    아기들이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울컥 화가 나기도 한다. 귀엽게 생긴 사람들이 욕하지 말고 싸움하지 말라는 법 없다.

    솔직히 귀여운 것이 진심으로 싫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무력하게 귀엽기 때문에 괜찮아~ 라고 납득해버리는 것이 무서울 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지금의 대세는 귀여움일지 모른다. 다만 메이저는 자신이 메이저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난 반대한다. 일단 싫어하고 본다. 스스로 책임을 충분히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흉을 본다. 그래서 스스로의 이면의 진실에 대해서 잊지 않게 하려고 한다.

    결국 이런 사람이 한 두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