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영웅전(Paradise Lost)

    나의 마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누구도 부유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가난하진 않았다.

    땅은 비옥하여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작물이 잘 자랐다.
    해충도 별로 꼬이지 않아 사람이 할 것이라곤 간혹 잡초를 뽑아주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가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충분히 한 해를 날 정도의 수확이 나곤 했다.

    곡식과 과일을 광 안에 가득 채워 넣고, 마른 풀을 엮어 지붕의 이엉을 새로 올리고 나면 작은 축제도 열렸다.

    늦은 밤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이었지만 우리는 축제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날 만큼은 아이들에게도 얼음 딸기주가 한잔씩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그 해의 수확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 틈에 앉아 얼음 딸기주를 홀짝였다.

    이 대륙의 그 어느 마을도 우리 마을처럼 풍요롭진 않다고 어른들은 항상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마을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고 종종 떼를 쓰곤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마을 밖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저 밖은 황폐한 바람이 대지를 휩쓸고, 비조차 땅에 머무르지 않는 적막한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마족이 습격할 지 몰라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검은 날개의 여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그 이야기는 언제나 마족을 멸절하는 그 날 여신이 강림하여 우리를 낙원, 에린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로 끝맺어지곤 하였다. 나는 우리 마을이 낙원 같다고, 에린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면 알게 될거라고.

    마족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던 무렵이었다.

    첫 해에는 봄이 끝나도록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수확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겨울은 어찌어찌 넘겼다. 이듬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맑은 날을 채 보기가 힘들었다.

    작물들은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물살에 쓸려 내려갔다. 그 해에는 축제도 열리지 않았다. 그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흉년이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굶주림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겨울을 날 식량마저 떨어졌을 때였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근처의 도시로 식량을 구하러 떠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한명이라도 입을 줄이기 위해, 나는 마을에 찾아온 용병단에 지원을 했다.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결국은 살아 남았다. 마족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다른 마을들을 지나갈 때면 간혹 고향 생각이 났지만, 곧 잊었다.

    동료와 마족들의 시체가 겹겹이 산을 이룬 전장에서 우리는 여신에게 기도를 했다.

    요즘 들어 가끔 마을의 소식을 듣곤 한다. 다행히도 기근의 상처를 이겨내고 마을이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작지만 제대로 된 용병단도 생겼다고 했다. 많은 용병들이 모여들어 어느새 마족 전쟁에 있어 중요한 요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낙원은 그곳에 없다.

    누구도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다. 마족도, 굶주림도 없는 평화롭고 풍족한 삶이 지속되는 그 곳이 바로 내가 소망하는 낙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