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The Tree)

저의 탄생 과정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당신들 인간 역시 자신이 태어나는 과정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저는 아주 작았던, 뭔가에 깔리기라도 하면 바로 생명의 불꽃이 꺼질 정도로 어렸을 때의 일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 있었던 것은 단 세 가지뿐이었어요. 나무로 된 울타리와 집, 그리고 그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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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눈을 떴을 때는 굉장히 불안했었습니다. 주위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나무를 베어 만든 것뿐이었으니까요. 인간들은 자신이 씨앗을 심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무를 아무 거리낌 없이 베어버리더군요. 때문에 하마터면 인간을 혐오할 뻔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없었다면 저는 제 팔로 인간을 죽이는 포워르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그가 저에게 처음 해 준 말을 저는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망각이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일 제가 뭔가를 망각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말만은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겨우 굳은 땅을 뚫고 간신히 빠져나온 저를 본 그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세심하게 저를 살펴봤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기쁜 듯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오, 벌써 싹이 텄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아주 밝았습니다. 좀 창백한 얼굴빛이었지만, 그 창백한 얼굴빛이 무색해 질 정도의 밝은 웃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그가 해준 말은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 곧 커다랗게 자라겠지? 얼른 컸으면 좋겠다."

후훗, 실례도 그런 실례의 말이 없었지요. 아직 어린 숙녀에게 '쑥쑥 자라라' 도 아니고 '커다랗게' 라니.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저는 그가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의 이웨카를 보고 나니까 제 키는 제법 자라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을 올려다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저와 키가 거의 비슷해 졌으니까요. 그리고 그 즈음부터 저는 거의 하루 종일을 그와 함께 했습니다. 절대 제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니에요. 전 제자리에 박혀 움직일 수 없는 나무니까요. 제가 그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매일 저에게 기대앉아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비나 눈만 오지 않는다면 그는 꼭 제게 기대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가끔 잠이 들기도 했죠. 이건 저만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는 잠이 들면 꼭 강아지가 그르릉거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곤 한답니다. 그때 보면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네? 제가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요? 그것도 전부 이 남자 덕분이랍니다. 늘 제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이따금씩 소리내어 읽어주기까지 하는데 글을 알지 않고 베길 수 있나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지루해서 그냥 읽고 들어본 것뿐인데, 계속 보다 보니 그게 점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인간처럼 말, 아니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나무가 된 거죠.

그리고 그는 책을 읽다가 가끔 저에게 말을 걸어주곤 했습니다. 나무에게 말을 거는 사람. 같은 사람이 본다면 제정신이라고 보기는 힘들겠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곳에 없었고, 덕분에 그는 누구의 시선도 인식하지 않고 저에게 말을 걸 수 있었습니다.

"이야 정말 빨리도 큰다. 이제 곧 사과도 맺히겠지?"

"후우, 너 없으면 더워서 책 어떻게 봤을라나 모르겠다."

"심심하지? 책이라도 읽어줄까?"

어찌나 다정하게 말을 하던지, 나중에는 제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더군요. 저렇게 열심히 말을 거는데 대답을 해 줄 수 없다니요.

그렇게 그와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했을까요? 어쩌면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다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어쨌건 저는 그를 한참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저는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더워도, 추워도 저와 함께 있는 그였지만, 비나 눈이 오면 책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었죠. 예, 주제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저를 아름답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은 주제넘은 사랑을 시작한 저를 가엾게 여기시겠죠.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인 분은 저를 혐오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가 그 어떤 시선으로 본다 해도 관계없습니다. 단지 그가 나를 혐오해 주지만 않으면, 그가 나를 동정하지만 않는다면 다른 누구에게 질시를 받아도 관계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을 때부터는 저도 그에게 열심히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오셨네요. 기다렸어요.'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피곤하면 들어가서 주무세요.'

많은 말을 걸어봤습니다. 가끔 그가 말을 걸 때면 제 스스로가 수다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는 저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더군요. 그는 사람이고, 저는 나무이니까요.

언젠가 그가 읽는 책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봤습니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관계가 없다' 라는 문장. 하지만 나이도, 국경도 관계가 없다지만, 인간과 나무가 사랑을 할 수는 없지요. 애정을 가지고 나무를 기르는 사람은 많겠지만, 나무를 연인처럼 사랑하고 길러주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든 것처럼. 단순한 애정과 연정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저를 사랑하지는 않았지요.

그가 저를 생각하는 마음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주인이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말라버리나 벼락에 맞는다해도 그는 별다른 감정 없이 죽어버린 저를 치우고 다른 나무를 이 자리에 심겠지요. 어쩌면 슬퍼해 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뿐이겠지요. 그에게는 그저 나무 하나가 사라졌을 뿐입니다. 만일 그가 없다면 저는 바로 시들어 죽어버릴 텐데요.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무, 그는 인간. 내가 없어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가 없으면 나는 시들어버린다. 그는 나를 잊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를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더군요.

결국 언제부터인가 저는 늘 같은 말만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제 말에 대답해 주세요. 저를 돌아봐 주세요. 나, 항상 그대만을 보며 이렇게 자랐답니다. 제발 저를 봐주세요.'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애원하다 지쳐 눈물을 흘려도 그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늘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있는 낮에는 그에게 말을 걹, 그가 없는 밤이면 하늘에 떠있는 이웨카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피폐해져 갔고, 숨결은 늘 무거운 한숨처럼 몸속에서 가라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결국 저는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원망하고, 이웨카를 원망하고, 모든 것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나에게 대답해 주지 않는 거죠? 결국 나무는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잠시 동안 서 있다가 사라지면 그만인, 그저 장식품과 같은 것인가요? 저에게 대답을 해 주지 않고 이렇게 마음만 아프게 할거면 차라리 사라져 주세요!'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유치한 생각인가요? 어쩌면 저는 그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 인간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꼭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늘 그를 볼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저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대가는 제 마음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여느 때처럼 그가 제게 기대어 책을 읽고, 제가 그런 그를 원망하고 있을 때,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보는 인간이 저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든 그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습니다. 태어나서 그가 그렇게 놀라는 것은 그때 처음 봤습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그가 물었습니다.

"날아가던 새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를 찾아온 남자가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능청스레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놀랄 정도로 냉정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외면했습니다.

"돌아가게."

"함께 가시죠."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요? 함께 가시죠? 그 말은 자신과 함께 이곳을 떠나자는 말인가요?

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묵묵히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만이 책에 고정되어 있을 뿐, 그가 책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떠나지 않으실 거죠? 여기가 당신의 집이잖아요. 여기 당신이 사는 곳이 있잖아요. 그러니 제발 떠나지 말아주세요.'

비겁한 제 마음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답답한 마음에 했던 말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제 기대에 부응해 주었습니다.

"아니, 자네 혼자 떠나게."

"당신은 살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었지만, 이름 모를 남자가 꺼낸 말에 저와 그 모두가 놀라서 다시 그를 돌아봤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놀란 건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그럼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그가......"

그 뒷얘기는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저의 목소리이지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불길했습니다.

제가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나는 살 수 없어. 그건 자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자조적인 그의 말에 이름 모를 남자의 얼굴이 경직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병은 분명 고칠 수 있습니다. 아직 그리 심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 남자 역시 저처럼 끝까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처럼 불길한 말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눈앞에서 실제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쿨럭! 쿨럭!"

갑자기 그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격한 기침을 뱉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침을 멈췄을 때 그의 손을 적시고 있는 것은 숨결이 아닌 탁한 검붉은 색의 피였습니다.

"괘, 괜찮으십니까!"

'왜 그래요? 괜찮아요?'

이름 모를 남자와 제가 동시에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아니 그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몇 번 더 작은 기침을 한 다음에야 겨우 숨결을 고르고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흐릿한 눈동자를 한 그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이름 모를 남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당신은... 드루이드 이십니다. 만물의 이치를 아시고 고귀한 지혜를 가지고 계신......"

"아니,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라네."

그가 이름 모를 남자의 말을 자르며 말했습니다. 이름 모를 남자는 그의 말에 자신이 하던 말뿐이 아니라 혀까지 잘린 듯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였기에 자네가 말한 것처럼 만물의 이치를 알고 싶었고, 남들이 우러러볼만한 고귀한 지혜를 가지고 싶었다네. 하지만 그 결과는 나 자신의 수명만을 알게 됐을 뿐이네."

말을 하던 그가 잠시 힘겨운 듯,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습니다. 그가 숨을 고르는 고요한 시간 동안 이름 모를 남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왠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에 눌린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나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네. 자네도 봤다시피 내 생에 최고의 실패작은 내 약해빠진 영혼을 거의 다 긁어냈어. 부디 내가 남은 생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속죄를 하면서 살 수 잇도록 해주게."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저에게 기대앉아 조용히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그의 모습에 이름 모를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또 다른 나무가 돈 것처럼 우두커니 서있던 이름 모를 남자는 갑자기 돌아보지도 않는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름 모를 남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가 다시 작은 기침을 한 두 번 토해내었습니다. 그가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작은 빗방울 같은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래도 녀석한테 싸늘하게 죽어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게 돼서 다행이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 들려있던 책이 슬픔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저의 눈물과 함께 천천히 떨어졌습니다.

그 때 저의 간절한 기도가 지겨웠던 것인지, 신께서 작은 기적을 내려주셨습니다. 저의 눈물은 제 속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눈물이 되어 그의 볼 위로 떨어졌습니다.

"우는 거니?"

저는 슬픔 속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그가 누구에게 말을 한 것일까요? 아까 그 이름 모를 남자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찾아온 것일까요?

"나를 위해서 울어주는 거니?"

아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체를 조금 돌려서 한 손으로 저는 쓰다듬어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봄날 햇볕을 쬐며 무릎 위의 강아지나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평화로운 동작으로 그는 천천히 저를 쓰다듬어줬습니다.

"내가 없어도 잘 자를 수 있겠지? 하긴 어느 정도 자란 뒤로는 혼자서도 잘 자랐으니까......"

'아니에요. 전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제발 힘을 내세요!'

하지만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를 쓰다듬던 모습 그대로 눈을 감으며 작게 웃었습니다.

"한 숨...... 자야겠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손이 서서히 아래로 미끄러졌습니다. 더불어 제 몸을 간질이던 숨결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안돼요! 죽지 말아요, 제발!'

그러나 역시 그에게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그에게는 새의 울음소리도, 바람이 불어 제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공정하면서도 너무 잔인합니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남아있는 다른 이는 생각해 주질 않으니까요. 저는 그런 죽음의 횡포에 가만히 당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가 죽는다면 저도 슬픔 속에서 곧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살고 제가 죽는다면 슬퍼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원래부터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뭔가가 하나 사라지는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나무. 다른 누구보다도 저의 생명을 남에게 나눠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몸을 숙여 그의 몸을 감싸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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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로 저의 팔이 그의 몸을 안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제가 뭔가를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짐작이지만, 아마도 그것은 그의 생명이겠지요. 저에게 기댄 채로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색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전부터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전부터 당신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전부터 당신을 이렇게 안아보고 싶었어요.'

신은 죽음과 같이 공정합니다. 신은 방금 그러신 것처럼 누구에게나 최고의 순간을 내어주십니다. 하지만 그러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슬픔도 주십니다. 저의 경우는 최고의 순간 뒤로 이어지는 건 지독한 고독뿐이겠지요.

'그거 알아요? 나무도 생명이 있다는 거...'

방정맞게 어느새 또다시 눈물이 흐릅니다. 하지만 꼭 그와의 이별이 슬퍼서 그런 건 아니에요. 쓸모없는 나무가 하나 사라진 것만으로 그는 다시 살아갈 수 있겠지요. 지금 이 순간, 그에게 시원한 그늘 외에 또 다른 것이 되어 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저는 나무입니다. 멈춰 서서 볼 만한 아름다운 꽃도 없고, 일 년 내내 상록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상록수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제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나무도 아름다울 것이라 자부합니다.

이제 점점 눈이 감기기 시작합니다. 제 가지 위에 앉은 새의 무게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네요.

만일 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이 미천한 나무에게도 있다면, 저는 아마도 저의 탄생 직후의 모습처럼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때도 이 생에서 당신의 쉼터가 된 것처럼 당신이 저에게 기대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것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