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의 작은 선물(A Little Present of The Little)

    -소원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셈?

    -어떻게 해야 하셈?

    -작은 구슬을,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두고, 100년이 지난 뒤에 찾아서 먹어야 한다고 들었심.

    -그러니까 100년 묵은 구슬을 삼키면 되는 거삼?

    -빙고심. 내 구슬은 50년 묵혔셈.

    -대단하셈! 그럼, 50년 뒤엔 무슨 소원을 빌 거심?

    -그걸 몰라서 물으셈? 거대 임프가 되겠다고 빌 거심!


    "귀여운 우리막내~"
    "으엑, 오빠들, 언니좀 말려줘!"

    언니는 나만 보면 부비부비다. 내가 귀엽다나.

    "꼬맹아, 알아서 빠져 나와."

    빠직, 내 이마에 심줄이 돋았다. 참자, 참자.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오늘로 내 나이도 두 자리수가 되었는데, 그만큼 마음의 나이도 자라야 한다고 큰오빠가 그랬잖아?

    "네 마음은 알겠지만, 이제 그만 풀어주지 그래. 오늘은 처음으로 막내가 집을 떠나 보는 날이잖아?"
    "그렇지. 벌써 우리 귀염둥이가 이렇게 컸다니..."

    언니는 글썽모드. ...위험하다. 이럴 때 언니와 떨어지지 않으면...

    "그래도 너무 귀여워~"

    더 강도가 세게 끌어안는 언니다.

    "자, 자. 그만들 해. 내가 얘기해 줬지? 낮엔 마을을 구경하거나 알바를 하고, 밤엔 우리랑 사냥하자. 도와줄게."
    "응!"

    맘도 착하고, 키도 이따만큼 큰 큰오빠. 언니도, 작은오빠도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큰오빠가 으뜸이다.

    "그럼, 갔다 올게!"
    "혼자서 성벽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언니의 당부가 울려 퍼진다.


    "하나, 둘, 셋, 넷. 노랑날개 나비가 보이나요?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친구도 없이, 혼자 있네요."

    언젠가 언니가 알려준 노래를 흥얼거리며, 북적거리는 던바튼 거리를 걸어본다. 발걸음이 가볍다. 이것저것 내 눈길을 끈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사뿐히 다가가 봐요.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나랑 같이 춤춰 볼래?"

    날아갈 것 같다. 마음도, 발걸음도.

    성당 쪽으로 향했다. 작은오빠가 알려줬다. 알바를 하려거든 이 알바는 놓치지 말라고. 사제 언니와 말할 때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눈을 마주치면 그 투명하고도 깊은 눈에 홀려서 빠져 나올 수 없다나.

    "꼬마야, 무슨 일이야?"
    "알바 주세요."
    "아직 시간이 안됐는데. 조금 후에 오겠니?"
    "...네."

    쭈뼛쭈뼛, 뒷짐지고 땅만 보며 말하는 내 모습이 우습게 비쳤을까? 그 눈, 한 번쯤 보고도 싶은데. 맑고 조금 높은 톤의, 아름다운 목소리만큼 눈도 예쁠 거야.

    "얘. 사람과 말할 땐 눈을 마주치는 게 예의라는 것도 몰라?"

    조금 토라진 듯한 목소리.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티가 났다. 귀여운 언니네.

    "앗-."
    "왜 그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언니랑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작은오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예쁜 눈이네..."

    언니 눈을 꼼꼼히 바라봤다. 그렇지만 빨려 들지는 않는걸.

    "후훗, 고마워. 아, 알바 시간 됐어."
    "얼른 주세요, 알바."
    "보채지 마. 그러니까... 사과 3개만 따오겠니?"
    "사과...?"

    언니나 오빠들이 가끔씩 따다 주기는 했다. 새빨갛고 동그란 열매. 내 작은 두 손 가득히 담기는 사과를, 난 참 좋아했다. 그렇지만 어디서 따는지는 모르는데.

    "마을 외곽에 가면 있단다. 금방 따올 수 있을 거야."

    예쁘게 웃는 언니. 그래, 금방 따올 수 있겠지. 빙글, 몸을 돌려서 뛰었다.

    "첫 번째 삶을 사는 10살 짜리가 해낼 수 있을까-♬"

    왠지 즐거운 듯한 언니의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 불안해진다.


    "성벽..."

    지나가던 사람에게 사과나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성벽 밖에' 이러고 뛰어갔다. 바쁜 사람인가. 언니가 성벽 밖으론 혼자서 절대로 나가지 말랬는데...

    성벽 앞에 도착했다. 나갈까, 말까? 마을 안에서 사과나무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서, 마감시간까지 5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스크롤의 숫자가 마음에 걸린다. 포기해 버릴까.

    '꼬.맹.이.!'

    뽀득, 사거리마크. 작은오빠의 외침이 귀에서 울린다. 좋아, 나가보는 거야!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우와..."

    혼잡한 성벽 안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감자밭 너머엔, 끝이 보이지 않는 풀밭과 작은 길. 바람이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나도 뛰어가 바람에 몸을 맡겨본다.

    "시원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풀썩 누웠다. 푹신푹신하다. 조금 더 가볼까?

    "다시 하나, 둘, 셋, 넷. 파아란 하늘은 눈이 시리구요.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새하얀 동물들 바다를 헤엄쳐요."

    노래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바다가 뭘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나도 그 속에 끼어 볼까요?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난 이 줄에서 몇 번째?"

    바람에 풀내음이 실린다. 향긋하다. 고개를 숙이고, 풀꽃 냄새도 맡아본다. 언니나 오빠들이 꺾어다 준 것보다 더 생생한 향기.

    "헤, 꼬마셈?"
    "누구?"

    꼬마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보아하니 아직 애티가 풀풀나셈."
    "그러는 넌 나보다 더 꼬마잖아!"

    내게 말을 건넨 애는 나보다도 키가 더 작았다.

    "난 절벽에 키도 작은 꼬맹인 관심 없으셈."

    글래머 누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투덜거림이 들린다. 흥, 누군 자기한테 관심있대?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웃긴 애다.

    "오늘 일진 너무 나쁘셈."

    꼬마애가 추적추적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궁금해서, 고개를 슬몃 돌렸다.

    "너, 다쳤잖아?"

    발을 질질 끌면서 걷고 있었다. 다리에 묻은 피. 깜짝 놀라 녀석을 붙들었다.

    "놓으셈! 이거 놓으셈!"
    "이런 다리로 어딜 간다는 거야? 자, 가만히 있어봐!"
    "시, 싫삼! 아윽-."

    정색하고 내게서 도망가려던 녀석은 다친 다리가 아픈지 푹 고꾸라졌다. 난 그 틈에 붕대를 꺼냈다. 가만- 언니가 대충 가르쳐 주긴 했는데.

    "고쳐줄게, 다리."

    꼬마애는 완전히 포기한 모양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뱉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이렇게 매는 건가?"
    "저, 저기... 제대로 할 줄 아는 거셈?"
    "당연하지! 조용히 있어 봐, 정신 사납잖아!"

    뭐, 대충 싸매기만 하면 되겠지. 녀석이 흘리는 식은땀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탁-

    "자, 다 됐어."

    후우, 나도 힘뺐네. 하얀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

    녀석은 의외로 쉽게 일어섰다. 헤, 잘 된 건가?

    "내 꼴이 어떠셈?"
    "미라같아."
    "동감이심."

    ...붕대를 너무 많이 쓴 걸까.

    "다리는 괜찮아졌잖아! 그거면 된 거야, 그거면."

    꼬맹이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가만...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었는데?

    "으아악-! 알바, 잊고 있었다아!"

    녀석은 귀를 틀어막았다. 처음으로 받아본 일인데... 알바, 꼭 완수하고 싶었는데.

    "무슨 알바셈?"
    "성당. 사과 가져오랬는데에..."

    꼬맹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내 얼굴을 보더니 또다시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 가져가셈."
    "사과 3알...?"
    "마감시간 맞추려면 빨리 가셈."

    난 녀석의 손에 들린 사과와 붕대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고마워."

    내 작은 손보다도 더 작은 손. 그 손에 담긴 빨간 사과를, 내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셈."

    꼬맹이의 손에, 작은 구슬이 들려있었다. 팔라라의 빛을 받아 예쁘게 반짝거린다.

    "100년 후에 찾아 가겠심. 잊지 마셈!"

    말을 마치고, 녀석은 붕대를 질질 끌며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구슬은 주머니에 넣고, 사과를 들고 성당으로 뛰었다.


    • 내가 그 꼬맹이의 이름이 '임프'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2년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