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암.."
나는 지루함에 나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립니다.
옆에서 입질을 기다리던 투박하게 생긴 아저씨가 나를 째려보네요.
"고기 다 도망가겠다. 이 아가씨야."
난 그렇게 무안을 당하고는 주눅이 들어 말갛게 가라앉은 저수지 수면에 뜬 내 분홍색 찌를 바라봅니다.
찰랑찰랑 기분 좋은 박자로 흔들리고 있군요.
요새 들어 티르코네일에는 낚시가 열풍입니다.
무슨 징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떠서 마실 수도 있는 깨끗한 아델리아 천과 저수지의 물 안에서..
간혹 1m 도 넘는 - 특히 찜이나 구이요리가 일품인 - 브리흐네 잉어와 은붕어는 물론이고 온갖 퀘스트 스크롤에, 심지어는 전사지망생들의 영원한 꿈, 클레이모어 까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서 클레이모어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입고 싶어하던 검사학교 교복도 나온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있는 돈을 다 털어 저수지로 나온 거지요.
솔직히 미끼통에 든 꾸물꾸물한 지렁이를 만지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해질 것 같아요.
대장간을 운영하시는 이미 이름보다는 웨폰브레이커 라는 별명이 더 친근한 퍼거스 아저씨께서는 저에게 꿈틀거리는 이두박근을 보여주시며,
"유릴양..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 고독한 남자들의 유희 라네. 핫핫핫~"
......상당히 설득력 없는 이야기였지만 미끼를 끼우는 법, 낚싯대를 던지는 법. 그리고 물고기를 낚을 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을 알려준 게 바로 퍼거스 아저씨였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다구요!
하루 종일 저수지 물가에 앉아서 허기를 나무열매로 달래며 약간 초록빛이 도는 파란 수면만 바라보는 일이란..
열심히 알바를 하고 스킬들을 연마하며 미래를 꿈꿔야 할 17살 소녀에겐 너무나 가혹하단 말이죠.
고작 낚은 거라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스크롤들과 대못, 구슬 정도였어요. 그나마 큰 브리흐네 잉어가 낚여 근처에서 낚시 중이던 요리사 언니가 브리흐네 잉어구이를 만들어 주었지만요.
비단결 같이 잔잔하던 저수지도 오렌지 빛 물비늘이 생기네요. 아마 조금 있으면 이웨카가 뜰 시간인 것 같아요.
배는 고프고, 잠은 오고.. 이제 날까지 추워질텐데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까요?
"거기 꼬마 아가씨. 이리 와서 좀 쉬다가 해. 밤낚시는 힘들다구~"
아침에 저를 야단친 그 아저씨와 날이 저물도록 낚시를 하던 여러 사람들이 하나 둘씩 따뜻한 캠프파이어 앞으로 모여듭니다.
다들 허탕을 친건지 미끼값이 아깝다며 투덜거렸지만 왠지 즐거워 보이는 건 그냥 제 생각일지도 모르겠어요.
모닥불이 사그러들자 몇몇 사람들은 저수지로 집으로 광장으로 흩어졌습니다.
나는 점심나절에 낚은 신발을 노라언니에게 수선한 후 다시 저수지로 돌아왔구요.
오늘은 밤을 세워서라도 좋은 걸 낚고 싶으니까요.
오늘밤 따라 이웨카가 왜 이리도 밝은지..
낚시만 아니라면 누구든지 붙잡고 함께 산책이라도 하자고 조르고 싶네요.
왠지 눈이 감기는 게...
눈앞에 사르륵 하고 마법가루라도 뿌려지는 기분이에요.
찌리릿 - .
낚싯대가 휘익하고 휘어지는 감촉에 나는 화들짝 놀라 달콤하던 얕은 잠에서 깨어 손에 힘을 줍니다.
'얼마나 큰 게 걸렸길래 이렇게 무거운 거야?'
난 투덜대면서도 내심 값비싼 클레이모어나 갑옷 같은 것이 올라오길 바랬어요.
그런 거라면 팔아서 검사교복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어.. 어...어!"
풍덩 -
저기 아래쪽에서 어떤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풍덩 하는 소리에 졸고 있던 사람들도 다 깬 듯 해요.
순간, 나는 힘을 다해 그 무거운 뭔가를 끌어당겼어요. 연약해 보여도 전 11살 때 맨손으로 곰을 잡았거든요.
"낚았다~!"
나는 왠지 기뻐 막 소리를 질렀는데 내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줄이 마구 엉켜버린 낚싯대였어요.
"어푸... 쿨럭! 쿨럭!"
"꺄아아악!"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낚싯대를 붙잡고 올라온 건 한 남자였어요.
"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흠뻑 젖은 옷을 짜는 남자에게 사과를 합니다.
아껴둔 캠프파이어 키트로 피운 불길에 몸을 말리며 그 남자는 저를 향해 무서운 표정을 하더니 이내 피식하고 웃네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하하하. 아가씨가 저를 낚은 건가요?"
뭔가 상당히 즐거워하는 그 사람 때문에 난 얼굴이 더워집니다.
나는 그런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일어섭니다.
그 때, 크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목을 잡네요.
"당신, 애써 잡은 월척을 그냥 놔줄 건가요?"
자세히 보니 이 사람 꽤나 멋있습니다.
차분히 가라앉은 갈색 눈 안에 작은 내 모습이 있네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점차 내 모습이 가까워집니다.
아.. 정말이지 이웨카가 너무도 밝은 날이에요.
[티르코네일 속보]
브리흐네 잉어 "사실 난 보름달이 뜨면 사람이 된다." 파문.
던컨 "나의 부인도 저수지에서 낚았다."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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