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나무 프롤로그
하얀나무
' 하늘이 이렇게나 눈부시도록 시린데, 어째서 내 마음은 시려지지 않는 걸까. '
하늘이 하얗게 시리다. 너무 시려서 눈조차 뜰 수도 없다.
마치, 어린 시절 좋아했던 눈꽃이 살짝살짝 내려올 것도 같은 날씨였다.
사실 이곳에선 지금 내리고 있지만- 그냥 '내릴 것'이라고 해두도록 하자.
이곳의 하얀 나무들은 눈부시도록 시리다. 마음으로도 시리고 시각으로도 시리다.
깨끗하게 살자고 어릴 때 그렇게 약속했건만 더러워진 내 손은 잔뜩 어린 핏방울로 이미 진득해져 버렸다.
이거, 참 웃긴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바보 - 내손으로 살아남겠다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그 순간부터 이 두 손에 다른 사람의 피를 묻히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나였건만, 이렇게 눈 오는 산속에서 혼자 누구의 손에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갈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저 웃음이 터져 나온다.
" 하하하.. 하.. "
그러고 보니, 나와 같이 도망쳐온 내 누나는, 어디로 간 걸까.
분명- 나를 먼저 살려 보내겠다 나 먼저 보내버린 누나 건만, 겉으로는 강인한 척 허세 부리던 누나 건만 왜 눈 오는 날에는 누나부터 생각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차피 다 죽어가는 목숨이니 조금만 더, 어린 시절의 누나를 회상하는 것도 전혀 나쁘진 않을 것이다.
" 왜 그러고 있어? "
누군가 왔나 보다. 하, 이것도 우스운 꼴이 아닌가.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던 내가, 다 죽어간다고 사람이 다가오는 인기척도 못 느낀다는 것이 나를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들었다.
" 그냥. "
" 누구 닮았어. "
" 누구? "
" 몰라. "
이상한 여자다. 그만큼 생각 외로 재미있을 거라 느껴지는 여자다.
" 아파? "
" 그렇게- 아프진 않아. "
" 에이, 아플 것 같은데? "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한 말투에 괜히 신경질이 나버렸나 보다. 괜히 더더욱 쌀쌀맞게 대답해져 버린다.
사실 이게 신경질이 난 건지 토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약 올리는 거라면 가버려. 너랑 대화하는 사이에 이만큼 나와버렸어. "
눈 위에 붉은 물이 주 - 욱하고 지나갔다. 내 주위에는 온통 붉은 물 투성이었다. 하얀 눈 위에 붉은 핏방울.
생각 외로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내가 한참 동안 생각하고 피식거리고 웃자 여자는 나를 한참 물끄러미 하고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내 와이셔츠를 찢었다.
" 뭐, 뭐 하는 거야?! "
" 상처치료. 일단은 응급처치니까. "
"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나 좀 가만히 놔둬! "
" 사람 귀찮게 하는구나. "
곧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내 눈앞은 흐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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