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데브니쉬 숲의 청년
- 청년의 꿈
- 청년의 목숨을 구하다
- 축제의 끝
- 평행선
- 결심
- 흰사슴 이야기
- 데브니쉬 숲의 청년
아주 오래 전 옛날, 데브니쉬 숲 깊은 곳에 하얀 암사슴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슴은 숲 속을 뛰어다니며 에린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이 삶의 큰 기쁨이었지요.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그녀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얘야. 네가 자연을 사랑함을 알지만 숲 주변으로는 나가지 말거라. 그곳은 우리를 노리는 인간의 영역이거든. 아무리 자연의 힘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지만, 인간과 가까이 지내다가는 흉한 일을 당하게 되지."
봄 기운이 데브니쉬 숲에 깃들기 시작한 어느 날, 하얀 사슴은 나비떼를 좇아 뛰어다니다가 그만 숲의 가장자리로 나오게 되었어요.
평소 부모님이 숲 주변으로는 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던 생각이 난 흰 사슴은 황급히 오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때 숲 곁길의 공터에서 나무등걸로 만든 허수아비를 상대로 검을 연습하고 있는 한 청년을 보게 되었지요.
물결치는 듯한 긴 머리, 단단하면서도 굳세 보이는 이마, 그리고 호수의 빛과도 같은 깊고 푸른 눈동자...
하얀 사슴은 그 청년을 보는 순간 단박에 반해버리고 말았답니다.
그 날 이후로, 하얀 사슴에게는 몰래 근처로 다가와 그 청년이 검을 연습하는 것을 나무 그림자 뒤에 숨어 보는 일이 또 하나의 은밀한 즐거움이 되었어요.
시간이 흐르며, 하얀 사슴은 그 청년을 조금씩 더 알게 되었어요..
그 청년은 마을의 기사 지망생이라는 것.
얼마 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마을의 벨테인 축제에 열리는 무도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기사로 인정을 받게된다는 것. 그리고 그를 준비하기 위해 이렇게 남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숲 속에서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사슴은 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보다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리고 그의 빛나는 눈빛 속에 잠기고 싶어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흰 사슴이 숲의 가장자리에 머무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어요.
그러던 어느날, 흰 사슴은 전에 부모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써서 인간의 아가씨로 모습을 바꾸고 청년의 곁으로 다가갔어요.
"귀여운 아가씨, 길을 잃으셨나요?"
비록 인간의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흰 사슴은 청년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청년 역시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아가씨로부터 호감을 느꼈어요.
흰사슴 아가씨도 얼굴만 붉게 물들인 채 기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냥 웃고만 있었더랬지요.
그 날, 두 사람은 날이 어둑해져서야 헤어졌답니다.
- 청년의 꿈
그 다음 날, 청년을 찾아 어제의 모습으로 변한 흰사슴 아가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청년 앞에 나가려 했지요.
하지만 청년과 호사스러운 옷을 입은 붉은 망토의 젊은이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무 뒤에 숨었답니다.
"이렇게 연습해서 이번 검술시합에서 기사로 인정받으면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
"헛된 짓일세. 자네가 기사가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청년이 말했어요.
"당신이 영주의 딸에게 이번 달 말 청혼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내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건, 자네의 이런 행동이 자네를 위한 것이면 모를까, 그녀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는 것이네."
"당신은 귀족이고 나는 가난한 기사 지망생에 불과하오. 그녀를 사이에 두고 당신과 경쟁하고 싶은 건 아니오."
"말뜻을 잘 알아들었기를 바라네."
귀족 젊은이는 말을 타고 다시 자기가 온 길로 돌아갔어요. 한참 그 뒤를 바라보던 청년은 허물어지듯 자리에 주저앉았고요. 그의 깊은 한숨 속에서 흰사슴 아가씨는 목이 메어 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랬구나. 저 사람은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구나. 그 때문에 이 숲 속에서 저렇게 연습을 해 왔던 거구나...
그녀는 기운이 쪽 빠져서 상심했어요.
내가 저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자리는 없는 걸까...
무심코 흘린 눈물방울에 눈이 흐려진 흰 사슴 아가씨는 돌아서며 나뭇가지를 건드렸고, 그 소리를 들은 그가 그녀를 애타게 불렀음에도 그녀는 도망치듯 숲 속으로 달려갔어요.
그녀는 크게 상심했어요.
하지만 그를 숨어서 지켜보는 것만은 그만두지 않았어요. 어느덧 자신의 마음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 그 청년.
그녀는 슬픈 눈매로 그 청년을 바라보며 기사가 되기를 바라는 청년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날마다 빌었어요.
- 청년의 목숨을 구하다
그날도 흰 사슴은 사람의 모습으로 숲 속 나무 뒤에 숨어 칼을 휘두르는 청년을 보고 있었어요.
오늘은 청년이 왠지 다른 때보다 더 힘들어 보였어요. 이제는 청년의 몸짓 하나하나에서도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 흰사슴 아가씨. 분명히 청년은 힘겨워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앞으로 나가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펐어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고 자신이 왔던 숲 속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짧은 비명이 들렸어요.
고개를 돌려 돌아본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독사 한 마리가 그의 다리를 물고 있는 모습.
그 독사는 놀라 휘두르는 청년의 팔에 맞고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청년은 곧 쓰러지고 말았지요.
흰사슴 아가씨는 사람으로 변한 뒤 황급히 달려나가 그의 다리를 묶고 상처를 찢어낸 뒤 독을 빨았어요.
쓰러진 그의 눈에 흰사슴 아가씨가 비쳤지만 그는 곧 의식을 잃었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옆에 흰사슴 아가씨가 약초 다발과 함께 엎드린 채로 잠들어 있었어요.
'이 아가씨가 나를 구했구나...'
아직 독 기운이 약간 남은 탓인지 청년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그 이후로 흰사슴 아가씨는 숨지 않았어요.
그의 곁에서 그가 검을 연습하는 것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고 숲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젠 그녀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 축제의 끝
숲 속에서 나가려 하는 흰 사슴을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불렀어요.
"너도 이제 혼약을 맺을 때가 되었구나. 너와 맺어지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있으니 만나보지 않으련?"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엔 이미 그 청년 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아직 자신에게 결혼은 너무 이른 일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늦봄이 되어 열리는 마을의 축제일이 조금씩 다가올수록 흰 사슴 아가씨의 마음은 조금씩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만약 시합에서 우승하게 되면 그 청년은 기사가 되어 영주의 딸에게 고백하겠지...'
'나 같은 건 잊어버릴거야.'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싶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그 사람처럼 인간이 되고 싶어.'
어느새 훌쩍 다가와버린 이멘 마하의 벨테인 축제일.
아가씨는 마을로 가서 그 청년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에 안절부절 못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어요.
그날은 오래도록 비가 내렸고, 흰사슴 아가씨는 언덕으로 올라가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며 청년을 위해 기도할 뿐이었지요.
비는 축제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뒤로도 한동안 계속되었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축제가 끝났어도 며칠 동안 그 청년은 숲으로 다시 오지 않았고, 언제나 그 청년이 연습하던 그 숲의 빈 공터에서 흰사슴 아가씨는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어요.
청년이 다시 나타난 것은 비가 그친 뒤로도 한참이 지난 뒤였어요. 청년의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생기있던 표정은 피곤하고 우울해 보였어요.
"나. 대회에서 졌어."
흰 사슴 아가씨를 보고 청년이 입을 열었어요.
"바보같지?"
고개를 젓는 흰사슴 아가씨는 그의 마음이 느끼는 고통에 마음이 아려왔고, 한편으로는 그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그에게 뛰어들었어요.
흰사슴 아가씨는 그의 품에 안겼고, 두 사람은 오래도록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어요.
- 평행선
다시 며칠이 지나고, 청년이 황급히 숲의 공터로 달려와 기다리고 있는 흰사슴 아가씨를 행복한 표정으로 끌어안았어요.
"나. 사냥꾼이 되기로 했어."
흰사슴 아가씨는 무척 놀랐어요..
"당신을 만나면서부터 느낀 거야. 난 이 숲을 사랑해. 이 숲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흰사슴 아가씨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 사람이 사냥꾼이 된다니!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그가 계속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아니야. 괜찮아. 기사가 되는 건 이제 포기하기로 했어. 이제는 이 숲의 사냥꾼으로 충분해... 게다가 당신도 만날 수 있고..."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뒷걸음쳐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는 열심히 사냥했어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실력도 늘어갔어요.
짐승을 잡아 손에 피를 묻히며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손질하고, 덫을 놓는 것이 그의 생활이 되었지요.
이제는 마을에서도 유명한 사냥꾼이 된 그는 그렇게 돈을 벌어 마을의 처녀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마련해서 흰사슴 아가씨에게 선물했어요.
하지만, 아가씨는 그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눈물을 흘릴 뿐이었어요. 몸에 그의 선물을 걸칠 때마다 죽어간 동물들이 자신에게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죠.
그런 그녀를 보며 청년은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동물의 가죽을 팔러 간 청년은 영주의 딸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음을 애써 담담히 가지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어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도착한 영주의 저택에서 더욱 아름다워진 영주의 딸이 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어요.
"데브니쉬 숲에 흰 사슴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계세요?"
청년이 대답했지요.
"소문일 뿐입니다. 아직 보지 못했지요."
"숲의 유능한 사냥꾼인 당신이라면 곧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흰 사슴의 가죽을 가지고 싶어요. 무엇으로든 사례할께요. 해 줄 수 있겠어요?"
"뭐든지요?"
"예.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마음을 정리했다지만 전부터 연모해온 영주의 딸이 자신을 바라보며 그렇게 부탁하자 청년은 마음이 흔들렸어요.
"시간을 주십시오. 흰 사슴은 성스러운 동물. 마주치기도 힘든 데다, 섣불리 죽이면 케르눈노스 신의 노여움을 사는 것으로 압니다."
"좋은 대답이 있기를 바라겠어요."
그 날, 숲 근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숲의 수호신이 너를 여여삐 본 모양이다. 너를 만나고 싶어하더구나."
흰사슴 아가씨의 부모님이 그녀에게 혼처를 권했어요. 하지만 흰사슴 아가씨는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요.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그 청년이 너무도 깊이 들어와 있었으니까요. 주저하는 그녀를 보며 다시 어머니가 입을 열었어요.
"얘야. 네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지 안다. 인간 청년에게 빠져 종일 그와 있는다면서?"
흠칫 놀라는 흰사슴 아가씨. 아버지의 인자하지만 엄한 음성이 이어졌어요.
"네가 비록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지만 그것은 겉 모양의 변화에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우리는 케르눈노스 신의 은총으로 숲의 운명을 지고 있는 데브니쉬 숲의 성수란다."
"게다가 그 청년은 숲의 동물을 마구 죽이고 돌아다닌다더구나."
"그런 사냥꾼을 네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좋아하는 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란다. 순리에 어긋나는 짓은 당시에는 달콤할 지 모르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되어 다시 찾아오게 되지."
흰사슴 아가씨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둘 사이의 마음이 깊을수록 그 상처는 더욱 크게 남을 게다. 당장 그 청년을 잊기는 힘들겠지만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무겁게 말을 맺었어요.
"그가 불행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를 잊어야 한다. 명심하거라."
- 결심
한편, 며칠 동안을 고민한 청년은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숲 근처의 오두막에서 나와 활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어요.
언제나 가던 그 공터에는 흰사슴 아가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부드럽게 안기는 흰사슴 아가씨를 토닥이며 청년이 입을 열었어요.
"며칠 전, 영주의 딸을 만났어."
흰사슴 아가씨가 움찔했어요.
"흰 사슴을 잡아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그래. 그랬었구나.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했고, 또 곧 모든 것을 체념했어요.
나는 결국 이 남자에게 죽을 운명이었던 거구나. 이루어지지 못할 사이... 그래도... 차라리 내 목숨으로 그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순간 다시 그가 입을 열었어요.
"하지만... 거절하기로 했어."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어요.
"사냥은 숲과 함께 있는 일이 아니었어. 여태까지 동물을 죽이면서도 무언가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었어."
흰사슴 아가씨의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알아. 당신이 숲의 동물을 사냥하기 원하지 않는다는 걸. 나, 사냥꾼을 그만 두겠어."
그리고 그는 여태까지 동물을 사냥해왔던 활을 풀었어요.
"당신이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
청년의 푸른 눈빛이 흰사슴 아가씨의 눈에 비쳤어요.
"당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나와 앞으로 함께해줘. 언제까지나."
흰 사슴 아가씨는 이윽고 마음이 터져나가는 듯한 기쁨을 느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흰 사슴 아가씨는 아까 부모님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그는 사람이고 나는 성수라지만 한갓 짐승.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망설이다 망설이다 결국 슬픈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젓고 마는 흰사슴 아가씨.
"그래... 그렇군...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다 결국 청년은 쓸쓸히 웃으며 뒤돌아섰어요. 등을 돌리게 되긴 했지만, 그녀는 그의 한숨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고, 그녀의 가슴 또한 수천 조각으로 찢어져나가는 것 같았어요.
흰 사슴 아가씨는 눈물 속에 흐려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영주의 딸과 약혼한 귀족 젊은이가 그 아가씨를 보았어요.
그의 눈에는 비친 것은 한 마리 하얀 사슴.
"그녀가 내게 말했던 사슴이다. 좋은 선물이 되겠군."
그는 활시위에 활을 재어 흰 사슴을 향해 날렸어요.
바로 그 때, 흰사슴 아가씨를 마지막으로 돌아보려던 청년이 귀족 젊은이가 활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몸을 날려 그녀를 감쌌어요.
그리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어요. 흰 사슴 아가씨의 비명소리가 숲 전체로 퍼져나갔고요.
- 흰 사슴 이야기
뜻밖의 사고로 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조금씩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마을의 젊은 사냥꾼이 숲에서 죽은 것이죠. 그를 돌본 의사는 숲에 사는 맹수의 소행으로 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이후로는 데브니쉬 숲에는 인적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이상한 소문도 돌았어요. 사냥꾼을 죽게 한 상처는 맹수의 발톱이 아니라 화살에 맞은 상처라는 이야기였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그 다음 달에 영주의 딸이 결혼식을 올려 그녀의 남편이 그곳의 영주가 되었고, 새로운 화제에 묻혀 그런 이야기 역시 사라져갔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영주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에도 천천히 흥미를 잃을 즈음, 데브니쉬 숲을 드나드는 몇 안되는 사람들을 통해 거기 사는 하얀 사슴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데브니쉬 숲에는 흰 암사슴이 살고 있는데, 그 옆엔 언제나 푸른 눈의 숫사슴이 함께 거닐고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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