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검입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에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어느순간 한 모험가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나를 제일 처음 휘두른 모험가는, 분명 미숙한 모험가였을 겁니다.
그는 내 몸에 여신의 가호가 담긴 물을 뿌리지도 않았고, 때문에 그가 나뒹굴때마다 나를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항상 촌장님께 달려가서 나를 찾았지요.
그럴때마다 촌장님은 항상 그에게 핀잔을 주었고, 그때마다 나에게 성수를 뿌려주었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원망같은건 품지 않았습니다.
나는 열심히 그를 도왔습니다.
그가 나를 들고 나무를 치더라도, 돌처럼 단단한 괴물을 치더라도 나는 어김없이 그의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내 몸이 부서져 나가, 어느 대장장이에게 맡겨졌지만 그는 실수하기 일쑤였습니다. 그가 나를 휘두를수록 내 몸은 더욱 망가저갔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몸이 거친 늑대 가죽을 잘라 나갈수록, 징그러운 거미의 다리를 끊어 갈수록 그는 점점 달라졌습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허리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는 보기에도 험악한 큰 검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투핸드소드라 부르며 휘둘렀고, 나는 간간히 쥐나 거미를 베어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가 좋았습니다.
나를 거둬준 첫 번째 주인인 그는, 처음 나서는 모험가 시절부터 나를 휘둘러왔고, 지금도 그는 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그 큰 검에 성수를 뿌릴때, 나를 잠시 보고 지나가, 결국 나에겐 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기뻤습니다.
단지 그가 나를 보아줬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가 밉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가 예전처럼 나뒹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를 기억해준 것일까요. 그는 묵묵히 나를 들고 마을을 벗어났습니다.
그 큰 검은 그의 등 뒤에 매달려 잠이 들었고,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그를 꽉 붙잡았습니다. 그는 멈춰서더니, 나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갈색 너구리의 몸을 베어나갔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단방에 나가떠러져야 하는
너구리가 그날만큼은 달랐습니다. 한번 베이고도 멀쩡하게 덤비더니, 마침내는 수십번을 휘둘러야 겨우 쓰러졌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는 눈썹하나 까딱없이 다음 상대를 골랐고, 나는 그날 수없이 휘둘러졌습니다. 비록 몸은 부서져 나갔지만, 단지 그가 나를 잡아주었다는게 기뻐서, 그게 기뻐서 내 몸이 부서지도록 너구리를 베어나갔습니다.
아마도 그는 돈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는 큰 도시로 가서 나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 장사가 잘 되었나 봅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다른사람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불러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가 돈을 들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서, 나는 단지 그가 행복하길 빌었습니다.
나를 산 새로운 주인은,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과, 특별한 빛을 내뿜는 검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쥐여지기도 전에, 그가 갖고 있는 검에게 먹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몸은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상관없습니다.
나를 처음 사용해준 그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슬픈 얼굴이 아닌, 행복한 미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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