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화신, 글라스 기브넨(Embodiment of the destruction, Glasgavelen)

    목차

    1. 서문
    2. 글라스 기브넨이란?
    3. 글라스 기브넨의 생태
    4. 소환 방법 : 골격의 구성
    5. 소환 방법 : 마법시료의 사용
    6. 소환의 완성
    7. 소환체의 차등소환
    8. 에디드 소울 현상
    9. 맺으며

    1. 서문

    어린 시절, 나는 보았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인들이 천지를 불태우며 포효하고 있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자비를 구하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는 이들을 쓰러뜨리는 일에 도전할 만큼 어리석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 거인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글라스 기브넨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성인이 된 뒤에도 이 괴물의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어린 시절의 공포는 끊임없이 내 자신을 짓눌러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러한 괴물이 다시 에린에 나타나 인간이 애써서 만들어둔 것을 휩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데 판단이 미쳤다.

    그 이후로 나는 글라스 기브넨의 실체를 찾는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글라스 기브넨을 가까이서 보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은 물론이고,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문헌을 뒤지고, 드루이드들을 찾아가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십여년에 걸친 연구와 채록 끝에 이 책이 만들어졌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인간의 세상을 불태웠던 거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또 다시 이런 존재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데, 그리고 이러한 거인이 나타날 징조를 파악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 글라스 기브넨이란?

    글라스 기브넨에 대한 최초의 문헌상의 기록은 모이투라 전쟁 이전, 센 마이의 평원에서 파르홀론 족과 포워르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이 당시 집채보다 큰 거인이 여러 명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글라스 기브넨이다. 수만 명이 넘는 인간들의 희생을 통해 이들 중 일부를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이들이 쓰러지면서 내뿜은 독소와 암흑의 마나로 말미암아 센 마이의 평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쓰러진 글라스 기브넨이 있던 자리에는 무수히 많은 마족들

    이 등장해 글라스 기브넨과의 싸움에서 지친 파르홀론 족을 남김없이 쓰러뜨렸다.

    글라스 기브넨에 대한 이야기로 또 하나 유명한 것은 빛의 왕, 루의 아버지인 키안이 글라스 기브넨을 찾아간 모험 이야기이다. 그 모험을 통해 키안은 에흐네와 만나 아들인 루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글라스 기브넨은 포워르의 왕 발로르가 인간의 세계를 불태우고자 한 장인 가바지 고에게 하사한 것으로, 가바지 고는 소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글라스 기브넨을 잃고 말았다.

    이 외에도 글라스 기브넨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남아 있다. 공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모이투라 전투에서 글라스 기브넨을 목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고, 더러는 티르 나 노이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세 전사 이야기에서도 글라스 기브넨의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신빙성을 확인할 수 없어 이 책에서는 그 이야기를 생략하도록 한다.

    1. 글라스 기브넨의 생태

    글라스 기브넨은 기본적으로 신비에 싸인 생명체이다. 금을 즐겨 먹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육중한 덩치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식료가 과연 어떤 것인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어느 정도까지 이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글라스 기브넨을 목격했다는 사람들마다 진술이 엇갈리고 있으며, 그나마도 오래 전 일이라 신뢰도가 매우 낮다.

    간혹 이 세상의 생명체가 아닌 것 같은 거대하고 단단한 뼈가 발견될 때가 있는데, 학자들은 이것을 글라스 기브넨의 뼈로 보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이런 뼈가 아직까지 한 벌을 이루어 발굴된 적이 없고, 에린 전역에서 간혹 부분부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글라스 기브넨의 탄생과 죽음, 수명을 알아내기는 매우 힘든 일인데, 특히 암수가 따로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글라스 기브넨이 번식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증거를 얻은 바는 없다. 이렇게 되면 글라스 기브넨이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강대한 마법력에 의한 이세계로부터의 소환일 것이다.

    글라스 기브넨이 만들어내는 재앙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리는 글라스 기브넨의 소환에 유의해야 한다.

    1. 소환 방법 : 골격의 구성

    글라스 기브넨의 소환법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본 옛 문헌에는 고대의 거인인 글라스 기브넨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소환의 토대가 되는 골격의 구성. 기본적으로 글라스 기브넨의 소환을 위해서는 고대의 거인이 수명이 다해 죽은 뒤 남긴 뼈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뼈가 하나라도 없는 상태에서는 소환이 불가능하다.

    뼈가 없을 경우에는 인공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소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금속을 이용해 빠진 부분의 뼈를 제작해 골격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금속을 사용할 수는 없다. 소환된 글라스 기브넨의 힘과 무게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통상의 금속으로는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육중한 덩치에도 날랜 동작으로 움직이는 글라스 기브넨의 하중을 견뎌낼 수 있는 금속은 오로지 하나 뿐. 에린에서 최대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는 금속, 아다만티움 뿐이다.

    아다만티움은 짙은 남색을 띄고 있는 고강도의 금속으로 글라스 기브넨의 뼈 전체를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 골격을 구성한다는 것을 상정할 경우 온 에린의 아다만티움을 구해서라도 글라스 기브넨 하나를 소환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을 만큼 희소한 존재다.

    1. 소환 방법 : 마법시료의 사용

    아다만티움은 높은 강도와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꿈의 금속으로 불리지만, 그 진정한 가치는 모든 마법적인 특성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즉,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칼은 모든 마법적인 방어효과를 무시하고,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방패는 사용할 경우 모든 마법적인 공격을 무효화한다. 이러한 아다만티움의 효과는 일반적인 강철에 부재료로 사용하더라도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아다만티움의 성격은 글라스 기브넨을 소환할 때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아다만티움 자체가 마법을 무시하기 때문에 글라스 기브넨의 소환마법조차 통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마법이 아닌 고대마법의 지혜를 빌린 특수한 시료가 필요하다. 아다만티움으로 된 골격에 이 시료를 바르고 일반적인 마법의 수준을 벗어난 고대마법의 힘을 깃들게 할 경우에는 놀랍게도 아다만티움조차 그 본연의 성질을 잃고 소환과정의 일부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글라스 기브넨이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시료의 합성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글라스 기브넨의 소환이 곧 세계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는 정확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겠다.

    1. 소환의 완성.

    구성된 골격에 시료를 발라 소환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다른 세계로부터 만들어진 힘과 의지가 골격에서부터 자라 조직이 만들어지고, 성장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마나의 공급이 필요한데, 이러한 마나의 공급은 일반적인 마법사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마나의 공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글라스 기브넨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성장해 소환자의 의지에 점차 귀를 기울여가게 된다. 그리고, 소환이 완료되는 때 해방된 암흑의 마나는 일시적으로 자연의 섭리와 융화되어 하늘을 검은 빛으로 물들인다.

    이렇게 소환이 완료되었을 때 글라스 기브넨은 마나와는 별도로 막대한 양의 먹이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바로 금. 소환한 뒤에도 금을 먹일 수 없다면 글라스 기브넨은 더욱 흉포하게 날뛰다가 결국 소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일설에 의하면 몬스터들이 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당 지방의 몬스터가 금을 가지고 다니는 일이 빈번해진다면 이것은 단순히 해당 몬스터의 수집벽이 아니라 글라스 기브넨의 소환을 위한 준비단계로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1. 소환체의 차등소환.

    글라스 기브넨은 강대한 힘과 마력을 지닌 생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자. 만약 소환된 글라스 기브넨이 소환자의 의지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판단하고 움직여 소환자와 적대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소환체가 의지를 가지고 있어 소환자의 의지와 충돌할 경우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글라스 기브넨과 같은 강력한 소환체의 소환에서는 소환자의 의지를 어떻게 소환체가 수행하게 만들 것이냐가 새삼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는 애초에 소환체의 의지를 배제한 소환법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최소한의 본능조차도 소환자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소환자는 소환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은 고수준의 마법을 필요로 하지만 어느 정도 소환에 익숙한 자라면 약간의 준비와 조심성만으로도 이런 효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1. 에디드 소울 현상.

    다만, 이러한 소환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그 소환체에 상관없이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보고되는데, 그것은 소환 과정에서 분리되어버린 소환체의 의지가 실체를 가지지 못하고 분리되어 영혼의 형태로 나타나는 에디드 소울, 영혼의 맴돌이 현상이다.

    이것은 소환체에서 제거된 의지가 갈 곳을 잃고 소환체의 근처의 생물에 빙의되거나 그 스스로가 생물의 모습을 하게 되는 경우로 이러한 생물의 모습은 위습 같은 부정형의 생물체나 새나 네발짐승은 물론이고, 때로는 인간도 보고되고 있다.

    에디드 소울은 소환물 자체와 현저하게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고, 그 자신도 소환물 자체에 의식적으로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환물과의 합일을 위해 그 주위에서 맴돌게 되어 있으며, 의지를 제거당한채 괴로와하는 소환물을 안정시키고 보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애초 의도했던 소환과 다른 결과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수 차례 보고된 바 있으므로 소환체의 의지를 제거하는 소환법을 사용할 때 이같은 사항은 반드시 확인해둬야 할 필요가 있다.

    에디드 소울 현상은 비단 소환체의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밀접한 간격을 이루는 두 개의 개체에서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데, 그 범위는 부부나 친구, 연인 등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부 학자들은 소울 스트림을 설명하는 데 이 현상을 확장시킨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1. 맺으며

    이것으로 글라스 기브넨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부디 이 책을 잘 기억해 그 날의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나와 같은 사람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절실하다.

    이제는 이 책을 읽을 후대에게 에린의 미래를 맡긴다.